○○가 초2학년 때의 일이다.
언어장애가 심한 ○○는 아주 힘들게 말을 하지만 자기의 생각을 모두 표현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.
다른 아동에 비해 똑똑했던 ○○를 위해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책임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.
○○의 능력에 맞는 분량의 숙제를 냈다.
○○는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.
내가 너무 많은 양의 숙제를 낸 것은 아닐까?
다음 날 양을 조금 줄여서 다시 숙제를 냈다.
그 다음 날도 ○○는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.
나는 다시 양을 조금 더 줄여서 숙제를 냈다.
결과는 마찬가지였다.
그렇게 금요일이 되었다.
당시 우리학교는 금요일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되어있었다.
부모님이 오시면 숙제를 할 수 없으니까 학교 수업 중에 숙제를 하자고 달랬다.
그러나 ○○는 끝까지 숙제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.
어머님이 오시고 ○○는 엄마를 보자마자 참았던 울음을 으앙~ 터뜨렸다.
어머님은 놀라셔서 물으신다. 무슨 일이냐고?
숙제를 안 해 온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.
이 아이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고 적당히 시키라고 하셨다.
나는 누구인가?
무엇하는 사람인가?
아이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장애가 있다고 해서 세상이 이 아이들을 봐 주겠는가?
너무도 안타까웠다.
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있는데
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시는 어머님이 너무 야속했다.
교사인 나로서는 부모님을 대신할 수 없기에 더 이상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없었다.
○○는 그 후 자기 기분에 따라 숙제를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했다.
그렇게 2학년을 마쳤다.
그 일이 상처가 되어 ○○와 나는 학교에서 만나도 서먹서먹했다.
아쉬움을 남기고 ○○는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.
세월이 흐른 후 바람결에 ○○의 소식을 들었다.
엄마, 강은희 선생님이 있어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야. 라고 말을 했단다.
나는 깜짝 놀랐다.
정말 ○○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?
○○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단 사실이 너무 기뻤다.
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었건만 ○○는 그 때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.
가끔씩 제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.
○○가 나를 만나기 위해 센터로 오겠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너무 좋았다.
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들은 제자가 없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나를 기억해 주는 제자를 만나는 일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.
거울을 보면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과연 ○○는 얼마나 변했을까?
약속시간을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우리는 드디어 상봉했다.
○○는 초2학년 때 모습 그대로 귀염성있는 모습이었다.
달라진 것은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는 것 뿐.
지금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여 홀로 지내고 있단다.
이런 중증의 장애인이 홀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. 과거 같았으면.......
그러나 세월이 좋아져서 활동도우미 시간을 배당받아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도움을 받으며 혼자 살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.
분명 기적이다.
구런데
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.
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잘 설명해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?
부모 형제도 때로는 티격태격 하는 데 남에게서 서비스를 받는 것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,
○○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.
활동도우미로 ○○의 곁을 지키는 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.
나이 들어가며 인생의 동반자로 ○○와 함께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.
감사합니다♥
